그날도 어김없이 밤을 맞이한 학교 도서관. 보통의 대학 도서관과 다를 바 없지만, 어두운 복도 끝에 자리한 ‘구관’은 모두가 기피하는 장소였다. 낡은 책장들과 오래된 책들, 먼지가 쌓여 무거워 보이는 분위기까지. 게다가 그곳엔, 누구도 설명할 수 없는 이상한 소문이 돌고 있었다.
진구는 그날도 야근 후 도서관을 찾았다. 현주와의 데이트 약속을 미뤄가며까지 몰입한 리포트 때문이었다. 도서관 신관에서 공부하는 친구들은 하나둘씩 집으로 돌아갔지만, 진구는 집중할 수 있는 조용한 공간을 찾고 싶었다. 그리고 어쩌다 보니 그 발걸음이 자연스럽게 구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그래도 한번쯤은 들어가 봐도 괜찮겠지?”
진구는 그렇게 생각하며 문을 열었다. 바닥에서 나는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그 오래된 공간이 그의 앞에 펼쳐졌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었지만, 진구는 애써 무시했다. 책장들 사이를 걸으며 그가 느낀 건,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함이었다. 다만, 너무나도 깊은 고요였다.
자리 잡고 앉아 노트북을 펼친 진구는 리포트 작성에 집중했다. 그 때, 어디선가 들려오는 작은 속삭임 소리가 그의 귀에 들어왔다. 처음엔 자신의 착각이라 생각했지만, 그 속삭임은 점점 더 선명해져갔다.
“뭐지?”
진구는 고개를 돌렸지만, 주위엔 아무도 없었다. 다시 리포트에 집중하려 했지만, 그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왔다. 소리는 마치 여러 사람의 목소리가 뒤섞인 것 같았다. 남자도, 여자도 아닌, 그 경계에 있는 듯한 음성이었다. 더욱 이상한 건, 그 속삭임이 정확히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다는 점이었다. 언어인지, 그냥 소음인지조차 구별이 가지 않았다.
진구는 뭔가 이상함을 느끼며 주변을 둘러봤다. 복도 끝에 걸린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이 한껏 기이하게 느껴졌다. 전혀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것처럼. 도서관의 어둠이 갑자기 그를 삼키려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제서야 진구는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아무래도 여긴 아닌가 봐.”
진구는 노트북을 서둘러 가방에 넣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 순간, 그의 주변을 둘러싸던 어둠이 점점 더 짙어졌다. 마치 도서관의 공기가 무겁게 내려앉는 듯했다. 그의 머릿속엔 속삭임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그 속삭임은 이제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 같았다. ‘진구’라고.
진구는 문을 향해 걸음을 옮겼지만,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점점 더 몸이 무거워졌다. 그리고 그 때, 문 옆에 걸린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이 희미하게 흔들렸다. 거울 속 자신은 분명 정면을 보고 있지 않았다. 고개를 돌려, 진구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뭐야… 이게.”
진구는 본능적으로 뒷걸음질쳤다. 거울 속의 자신은 현실의 자신과 다른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었다. 그 모습은 점점 더 기괴해지며, 진구에게 다가오는 것 같았다. 공포감이 그의 온몸을 휘감았다. 도저히 이곳에 있을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진구는 혼신의 힘을 다해 문을 열고 밖으로 뛰쳐나왔다. 그의 심장은 미친 듯이 뛰고 있었고, 숨이 거칠게 가빠졌다. 밖으로 나와 보니, 모든 것이 정상적이었다. 그제야 진구는 자신이 무언가 잘못 본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도서관 구관 쪽을 다시 돌아보니, 여전히 그 문은 그의 등 뒤에서 음산한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진구는 마음을 진정시키며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그날 밤, 진구는 잠을 이루지 못했다. 도서관에서 겪은 일들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분명 뭔가 이상한 일이 있었다. 그 속삭임, 거울 속의 기이한 모습, 그리고 그 어둠. 진구는 더 이상 그곳에 가지 않기로 결심했다.
하지만 그 결심은 오래가지 못했다.
다음날 아침, 친구 재근에게 전화를 걸어 도서관에서의 일을 이야기했다. 재근은 놀라며 말했다.
“진짜? 거기 원래 이상한 소문 많잖아. 근데 직접 겪었다는 건 좀… 확실히 이상한데.”
재근의 말에 진구는 더욱 확신이 들었다. 혼자서 이 일을 해결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재근과 함께 다시 한번 그 도서관을 방문해 보기로 했다. 이번엔 더 준비를 갖춰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진구와 재근은 다시 도서관 구관을 찾았다. 낮이었지만, 여전히 그곳은 어둡고 음산했다. 재근은 진구에게 말했다.
“여기서 뭘 찾으려고 하는 거야? 그냥 도서관이지 않나?”
진구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뭔가 있어.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히 뭔가가 있어.”
두 사람은 도서관을 돌아다니며 이상한 점들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구관 구석에 오래된 서류들과 함께 쌓여 있는 한 권의 낡은 책을 발견했다. 책을 펼쳐본 재근은 깜짝 놀라며 말했다.
“야, 이거 봐! 이건 그냥 책이 아니야. 뭔가… 저주받은 것 같아.”
책 속에는 읽을 수 없는 문자들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문자들은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하게 다가왔다. 진구는 그 책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책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마치 그를 사로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순간, 다시 그 속삭임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더 명확하게, 더 크게 들려왔다. 진구는 그 속삭임이 바로 이 책에서 비롯된 것임을 깨달았다.
“이 책이 문제야… 이걸 없애야 해!”
진구는 급하게 책을 덮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지만, 그의 손은 책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마치 책이 그를 붙잡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속삭임이 점점 더 크게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이제는 분명히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진구, 진구, 진구…’
진구는 혼신의 힘을 다해 책을 바닥에 내던졌다. 그리고 그 순간, 도서관 전체가 흔들리는 것 같았다. 재근은 당황한 표정으로 말했다.
“야, 이건 진짜 위험해. 여기서 나가야 해!”
두 사람은 도서관을 빠져나가기 위해 달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순간, 도서관의 문들이 갑자기 닫히기 시작했다. 마치 누군가 그들을 가두려는 듯이. 진구는 공포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재근은 침착하게 말했다.
“진구, 진정해. 방법이 있을 거야. 우리 이걸 해결해야 해.”
하지만 진구는 이미 공포에 압도되어 있었다. 그의 머릿속에는 그 속삭임과 함께 그 거울 속의 자신이 계속해서 떠올랐다. 도서관의 어둠이 그들을 덮쳐오기 시작했다.
진구는 재근의 손을 잡고 말했다.
“우린 여기서 나가야 해… 무조건 나가야 해.”
하지만 도서관의 문은 그들에게 열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점점 더 강해졌다. 그 소리는 이제는 분명히 두 사람 모두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진구, 재근…’
진구와 재근은 도서관의 문을 두드리며 외쳤다. “도와줘! 누구 없어요?!” 하지만 그들의 목소리는 아무에게도 닿지 않았다. 마치 도서관이 그들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듯했다.
그 순간, 도서관의 불빛이 깜빡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속삭임은 이제는 귀에 대고 말하는 것처럼 명확해졌다.
“너희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다. 여기서 영원히 갇히게 될 거다.”
진구는 그 소리에 놀라며 주변을 둘러봤다. 하지만 여전히 아무도 없었다. 그저 도서관의 어둠이 그들을 집어삼키려는 듯이 다가오고 있을 뿐이었다. 진구는 재근을 붙잡고 말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뭔가를 해야 해. 이 책, 이 책이 문제야. 이걸 없애야 해.”
재근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그 책을 불태우자. 어떻게든 없애야 해.”
두 사람은 서둘러 도서관의 중앙으로 돌아가, 그 책을 찾기 시작했다. 그 책은 여전히 바닥에 놓여 있었고, 그 속삭임은 점점 더 강해졌다. 재근은 성냥을 꺼내 책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그 순간, 도서관 전체가 폭발하듯이 흔들렸다.
불길이 책을 삼키기 시작했고, 그 속삭임은 점점 더 약해졌다. 진구와 재근은 공포에 떨며 그 불길을 바라봤다. 그들은 그 불길이 도서관 전체를 태울까 두려웠지만, 동시에 그 불길이 그들을 구원할 것이라는 희망도 있었다.
결국, 불길은 책을 완전히 삼키고 사라졌다. 도서관은 다시 고요해졌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이전과는 달랐다. 진구는 느낄 수 있었다. 그 속삭임이 사라졌다는 것을. 그 기이한 기운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근과 진구는 서둘러 도서관을 빠져나왔다. 그들은 이제 더 이상 그 어둠 속에서 자신들을 부르던 목소리에 시달릴 필요가 없었다. 도서관 구관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그들에게 더 이상 두려움은 없었다.
하지만 진구는 여전히 뭔가를 잃어버린 기분이었다. 도서관에서의 경험이 그에게 남긴 상처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그는 그날 밤, 다시는 그 도서관을 찾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그가 다시 한 번 그 속삭임을 듣게 될 때까지, 계속 유지될 것이다.